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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8
대약물시대 하면,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각종 경기력 향상 약물(PED)이 흔했던 미국프로야구(MLB)의 1990~2000년 초 시기가 떠오릅니다. 그 선수들 사이 파이팅 넘쳤던 박찬호 선수👍
여기서는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대약물시대'라고 부를만큼 흔해진 정신과 약물 남용과 관련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과 진단은 너무나 쉽게 내려지고, 항정신성의약품(antipsychotics)은 너무나 손쉽게 처방됩니다.
단 몇 분의 면담 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라는 이름이 붙고, 그 진단은 약물 처방으로 직결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Saving Normal』의 저자이자 전 DSM-IV 책임 편집자인 Allen Frances 박사는 이와 같은 현상을 "정상의 병리화(pathologizing normality)"라고 비판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단순히 의학적 기준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왜, 어떻게 잘못된 진단과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는지를 사회적·의학적 맥락에서 통렬히 고발합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우리와 다르지만, 잘 읽어보면 한국 상황에도 유사하게 적용되어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정신질환 진단 기준, 과연 절대적인가?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전 세계 정신의학의 진단 지침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Frances는 DSM이 "엄격한 과학적 근거보다는 전문가 합의와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밝힙니다. 특히 DSM-5의 새로운 진단범주는 광범위한 과잉진단을 유발했으며, 이로 인해 정상적인 감정 상태조차 병으로 간주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슬픔과 애도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2주 이상 지속되면 ‘주요 우울장애’로 진단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맥락 없는 표면적 증상 위주의 진단 방식은 잘못된 약물 치료를 초래하게 됩니다.
2. 약물 오남용, 알고 보면 구조적인 문제
정신과 약물은 확실히 특정 환자군에게는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치료적 목적이 아니라 편의적 처방이 일상화된 현실이 문제입니다. 이 현상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합니다.
▶ 과잉진단(Diagnostic inflation)
DSM 진단 기준 완화 →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질환 진단 부여
보험 청구를 위해서는 '정신질환 진단'이 필요 → 의사도 어쩔 수 없이 진단을 붙이게 되는 구조
▶ 초기 진단의 불확실성
특히 청소년기에 내려지는 진단은 시간에 따라 크게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단이 한 번 내려지면 “낙인(labeling)”처럼 굳어짐
▶ 일차 진료(primary care)의 문제
7분 진료, 정신건강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만 받은 일반 내과의들이 약 처방을 맡음
광고에 노출된 환자가 “약을 주세요”라며 요구하면,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약부터 처방하는 경향
3. 약물 남용의 실제 사례: 정상인에서 정신과 환자로 전락하기까지
책에서는 ‘Myra’라는 여성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단순한 불안감을 느꼈을 뿐이지만, 자칭 OCD 전문가라는 정신과 의사의 손에서 "OCD → BPD → Bipolar II"로 진단명이 변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항우울제 → 항정신병제 → 수면제 → 각성제가 차례로 추가되며, 그녀는 말 그대로 "정신약 칵테일"의 실험대상이 되었고, 부작용으로 삶이 파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4. 항정신성 약물의 숨겨진 부작용
항정신성의약품(antipsychotics)은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 치료에 필수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면장애, 불안, 짜증 등 경증 증상에도 남용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체중 증가, 대사증후군, 당뇨병, 심혈관 질환 유발
졸림, 인지기능 저하, 감정 무감각, 삶의 질 저하
일부 환자에서는 자살충동을 악화시키기도 함
주) 섬유근육통과 같이 중추 감작이 관련된 난치성 만성 통증 질환에서 항정신성의약품을 보조적 치료제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항정신성의약품이 통증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고, 약물 오남용이 신경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만성 통증 환자 중 마약성 진통제(opioid) 오남용 위험이 높은 환자들이 통증 민감도가 높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주) 근래 일부 학생들이 ADHD 약을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해 복용한다는 뉴스를 접하였는데요. 당장 학업성취도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처방 적응증이 아님에도 그렇게 복용하는 것이 5년, 10년 후에 괜찮을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5. 정신과 약물, 무조건 피하자는 말일까?
Frances는 약물 자체를 악마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약물이 아니라 “무분별한 진단”과 “약물 중심 치료 시스템”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잘 쓰인 약은 생명의 은인”이라며, 약물의 효과와 필요성을 인정합니다.
결론: 진단은 신중하게, 약물은 절제 있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치료인지, 아니면 사회적 불안과 일시적 고통을 너무 빨리 ‘병’으로 해석한 결과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DSM은 절대적인 진단기준이 아닙니다.
가볍게 진단 받고 약을 복용하기 전에, 다른 치료 대안(심리치료, 생활습관 교정 등)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진단은 스냅샷이 아니라 영화처럼 시간을 두고 관찰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참고 문헌
Frances, A. (2013). Saving Normal: An Insider’s Revolt Against Out-of-Control Psychiatric Diagnosis, DSM-5, Big Pharma, and the Medicalization of Ordinary Life. HarperCollins. (국내에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로 번역되어 출간된 바 있습니다.)
Hall, O. T., et al. (2022). Central sensitization in opioid use disorder: a novel application of the American College of Rheumatology Fibromyalgia Survey Criteria. Pain Reports, 7(4), e1011.
Younger, J., et al. (2011). Elevated pain sensitivity in chronic pain patients at risk for opioid misuse. The Clinical Journal of Pain, 27(8), 75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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